부정적인 감정을 없애는 5가지 방법

2018. 9. 12. 15:53책 읽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당신은 스스로의 행복감을 높이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는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고통에 저항하는 낡은 습관에 빠지지 않은 채, 어떻게 행복으로 이끄는 긍정적 감정을 기를 수 있을까? 어떻게 오직 고통만을 먹고사는 정신적 습성이 지배했던 과거와 결별할 수 있을까? 

  

자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이야 말로 불필요한 감정소모,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생활 속에 ‘자기연민’을 도입하고, 불필요한 고통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살펴보자.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는 '자기연민'의 5 가지 방법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고 우리 스스로를 사랑해 줄 수 있는 ‘자기연민’을 우리 삶 속으로 가져오는 5 가지 주요한 방법이 있다. 

  

(1) 신체적 (2) 정신적 (3) 감정적 (4) 관계적 (5) 영적 방법이다. 이들 각 영역에는 선택 가능한 수많은 수행법이 있다. 생활 속에서 그 수행법들을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에 관한 몇 가지 예비방안을 소개하겠다.


(1) 신체적 – 몸을 부드럽게 하기


우리의 근육은 단단한 방패를 만들어 세상의 잠재적 위험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의 두뇌는 내부로부터 오는 위협과 외부로부터 오는 위협을 쉽사리 구별하지 못하므로, 설사 시험성적을 놓고 걱정하더라도 근육이 나무의 옹이마냥 단단해지곤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근육이 긴장한 탓에 몸의 모든 기관이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만일 명상하는 도중이나 가만히 앉아 있는 동안에 긴장을 느낀다면, 복부를 부드럽게 하려고 애써라. 복부를 느슨하고 편안하게 하라. 또 다른 신체 부위가 긴장돼 있으면, 그 부위 역시 부드럽게 풀어줘라. 그런데 부드럽게 한다고 해서 긴장을 풀려고 애쓰는 것은 아니다. 긴장을 풀려다 보면 스스로에게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저 부드러워져라.

  

호흡의 경우도 똑같다. 긴장하면 호흡이 짧고 얕아진다. 호흡을 조금 부드럽게 해보라. 아주 천천히 내쉬고 들이쉬면서 복부를 부풀린다. 내쉴 때는 들이쉬는 길이의 두 배로 하라. 호흡 훈련을 마친 뒤 얕은 호흡으로 되돌아갈까 봐 걱정하지 마라.

  

스트레스받은 몸을 어루만지거나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신체적 자기연민의 범주에 속한다. 어쩌면 낮잠을 자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고, 따뜻한 물에 목욕하고, 기분 좋게 햇볕을 쬐고, 휴가를 떠나고, 개를 어루만지거나 마사지를 받을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긴장된 부위를 부드럽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몇 분이라도 여유를 가지고 생각하라.

  

자신의 신체를 돌보면 정신도 맑아진다. 충분히 잠을 자고, 알맞게 먹으며, 적절히 운동하고 있는가? 운동에 관한 한 정신과 신체는 정반대일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몸이 잠잠하면 정신이 바쁘게 움직이고, 몸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정신은 고요해진다.

  

항우울제나 항불안제를 복용하는 것이 어떻게 자기연민 수행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답은 간단하다. 

  

무엇이 가장 연민 어린 행위인지 스스로 물어보라. 필요한 약을 복용하지 않는 것은 자기처벌의 일종일 수 있으며, 수치심 또는 신체를 자연스럽게 놔둬야 한다는 강박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욕구를 외면하는 것일 수 있다. 정반대로 약물치료에 의존하는 것은 알아채기 어려운 정서적 회피의 일종일 수도 있다. 약물치료로 건강이 더 좋아질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하고, 건강한 방향으로 행동하라. 만일 약물치료 없이도 잘 지낼 준비가 되었다고 느낀다면 그 사실을 꼭 의사와 의논하라. 

  

자기연민을 수행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은 당신이 이미 실행하고 있는 방식이다. 지금 우리가 스스로를 돌보는 방식을 인정하고 나면 자신이 가진 힘을 기반으로 삼을 수 있으며, 압박감을 느낄 때에도 우리가 가진 좋은 습관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니 우리 내면에서 진실로 좋다고 느껴지는 진정한 돌봄의 견지에서 생각하라. 예를 들어, 많은 이가 아침에 커피를 마시더라도 당신은 뜨거운 초콜릿 한 잔을 즐길 수 있다. 무엇이 자신을 위로하고 편안하게 해주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믿음을 스스로에게 줘라. 마사지를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낮잠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당신은 어떤가?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거나 일이 도무지 안 풀릴 때 당신에게 진짜 필요한 게 뭔지 주목하라.


(2) 정신적 – 주문을 반복하여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기


불필요한 일상의 염려를 놓아버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고대의 한 전략은 주문mantra을 활용하는 것인데, ‘만트라’는 문자 그대로 ‘마음을 위한 도구’라는 뜻이다. 이 방식으로 효과를 보기 위해 반드시 주문을 외국어로 발음할 필요는 없다. 흔한 주문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와 “쉬엄쉬엄”이다. 도리스 데이Doris Day는 “케 세라 세라”라는 주문을 노래로 불렀는데, ‘될 대로 되겠지’라는 뜻이다. 주문이 지닌 이런 의미와 정신 집중 효과 덕분에 주문을 반복하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단 하나의 단어나 문구로 집중력이 살아날 때마다 우리는 잡다한 생각에서 벗어나는 셈이다. 단순히 마음속으로 거듭거듭 “예”라는 말을 되뇜으로써 도움을 얻는 이들도 있다. 비관주의자들은 “이게 아니면, 저거겠지!”라는 주문을 특별히 즐기는 듯하다.

  

우리는 다양한 정신 상태에 대처할 수 있는 주문들을 대상으로 실험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강박관념을 갖지 않도록 도와주는 주문은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다. 


수치심을 없애는 주문은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다. 


반감을 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익살스런 주문은 

“그렇다면 나를 고소하라고!”다. 


말투를 달리해 주문을 외면서 실험해보라. 


‘그렇다면 나를 고소하라고’는 건방지고,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는 겸손하다. 

자기친절을 키우기 위해 “너한테 잘해”나 “나한테 신경 써” 같은 주문을 외어보자.

마지막으로, 머리 아픈 문제로 고통받을 때, 우리는 두뇌에 대한 연민을 익힐 수 있다. 두뇌의 무게는 몸무게의 2퍼센트밖에 되지 않지만, 열심히 일하다 보니 우리에게 필요한 전체 산소의 25퍼센트를 쓴다. 두뇌는 낮 동안 못다한 일을 해내기 위해 밤에도 계속 깨어 일을 하기도 한다. 내가 아는 한 내과의사는 과도하게 작동하는 두뇌에 대한 연민을 익힘으로써 자신의 강박 성향을 누그러뜨렸다. 강박관념이 들 때마다 그는 말했다. “불쌍한 두뇌, 또다시 그 힘겹고 불필요한 수많은 일을 시작하려 드는구나!”


(3) 감정적 – 자기 느낌과 친구 되기


당신은 자기 감정 상태를 어떻게 돌보는가? 

  

연민 어린 방식은 고통스러운 감정과 친구가 되어주는 것, 다시 말해 그런 감정과 다투기를 멈추는 것이다. 이에 알맞은 단어는 많다. 공감, 배려, 친절, 돌봄, 용서, 고마움, 박애, 사려 깊음, 관용, 격려, 수용, 이해, 우정, 동정.


브라이언은 자기 건강에 강박적으로 걱정이 많은 중년 남성이었다. 그는 통증을 느낄 때마다 의사를 찾았다. 브라이언은 불안을 다스려보려고 동네 명상센터에서 마음챙김 명상을 배웠다. 나는 브라이언에게 자기연민 기법을 가르쳤다. 몇 달이 지난 뒤, 브라이언의 아내와 내가 생각하기에는 꾸준히 진전이 있었는데도 그는 내게 이렇게 선언했다.


- “저기 말이죠, 내가 배운 것들이 하나도 도움이 안 돼요!” 


“배운 게 어떻게 도움이 안 되죠?”  


- “그게 말이죠, 온갖 통증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지 않아요. 통증 때문에 죽을 것만 같아요! 아내는 이러는 내가 이젠 신물이 난대요. 통증을 느낄 때마다 위로를 받으려고 아내한테 달려가거든요.”


우리는 브라이언의 불안에 대해 깊이 있게 토론하면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 어린 시절 크게 아픈 적이 있고, 강박증이 집안 내력이기 때문에 불안 증세를 보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 살다 보면 좋든 싫든 불안한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 브라이언에게 특히 잘 나타나는 불안 유형은 강박감이다.


• 우리는 감정을 상대로 다툼을 벌여선 안 된다. 그랬다간 감정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 모두가 인생에서 고통을 겪는다. 건강에 대한 불안은 브라이언에게 특히 힘든 고통이다.


• 우리 치료의 목적은 불안을 더 잘 수용하려는 것이지, 불안 그 자체를 줄이려는 게 아니다.


• 브라이언은 불안에 대해 더 친절하고 덜 혐오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이윽고 브라이언이 말했다. 


- “제가 스스로를 안쓰럽다고 느끼게 그냥 내버려두어야 한다는 말인가요?” 


내가 대답했다. 


“네, 그래요. 그게 시작입니다.”

  

그에게 심리학자 스티븐 헤이스Steven Hayes가 말하는 “창조적 절망”의 순간이 찾아왔고,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유연해지면서 치료의 길이 열렸다.

  

브라이언이 스스로에게 준 동정처럼, 용서는 감정적 자기돌봄의 중요한 측면이다. 많은 이들이 실수를 저지른 자신을 잘 용서하지 못한다. 스스로에게 어떠한 자비도 베풀지 않는다. 

  

자신을 용서하는 한 가지 방법은 “이럴 때 가장 친한 친구라면 내게 뭐라고 말할까?”라고 질문하는 것이다. 또는 “예수나 부처, 또는 크리슈나라면 뭐라고 말할까?”라고. 더 너그러운 다른 사람의 관점에 섬으로써 우리는 지나친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책 대부분은 불편한 감정이나 우리 자신과 좀 더 친근해지는 법을 다룬다. 우리 자신이 즐길 수 있는 활동을 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다음 예를 참고하라.


•음악 듣기

•연날리기

•섹스에 대해 생각하기

•CD 구입하기

•정원 가꾸기

•영화 보러 가기

•조개껍데기 모으기

•휴가 떠나기

•교회나 절에 가기

•소설 읽기

•운전하기

•자전거 타기

•요리하기


일처럼 느껴지는 활동보다는 본질적으로 즐거움을 주는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우리 자신을 감정적으로 돌보는 방법이다. 


(4) 관계적 – 다른 사람과 관계 맺기


다른 사람들과 유대를 맺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자기돌봄으로, 고립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네프가 정의한 자기연민의 구성 요소임을 기억하라. 실제로 혼자 있든 다른 사람과 같이 있든, 우리는 고립되어 있다고 느낄 수 있다.



고립감 때문에 대수롭지 않은 불운이 절망으로 바뀌기도 하고, 사소한 불안감이 두려움이 될 수도 있다. 혼자 사는 노인이 건강에 문제가 생길 때 보통 이렇게 느끼는데, 각종 새로운 증상이 닥쳐올 재난의 징표다. 고립은 누락, 부재에서 오는 일종의 오류이기 때문에 우리를 지원하는 연결망이 약해지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 고립은 우리가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는 세계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는 우리가 내면으로 느끼는 방식에도 크게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거짓말하고, 훔치고, 남을 속인 날에는 밤잠을 설치기 십상이다. 그런 행위는 단기간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될는지 몰라도 정서적 건강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우선, 그런 행위 탓에 자신과 다투게 되어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고, 남들로부터도 멀어진다.


관계 안에서 친절을 베푼다는 것은 우리 행동이 남들을 돕고 남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바람 쪽으로 이끌린다는 의미다. 달라이 라마는 이를 “지혜로운 자기애”라고 부르는데, 상대가 답례로 우리에게 친절해야겠다고 마음먹기 때문이다. 따뜻한 상호교류의 기억을 통해서도 우리는 지속적인 행복감을 맛볼 수 있다.


우리의 행위는 좋든 나쁘든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동물이나 식물을 죽여 먹으면서 생존한다. 내가 아는 캔자스 출신 정신과 의사는 도살장에서 일하는 이민자들을 치료했다. 이 의사는 자기 환자들이 일주일에 5일 동안 하루 종일 동물을 죽이면서 정신적 외상을 입는다고 말했다. 우리는 음식을 먹을 때, 식자재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겪는 정서적 충격은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생명 순환의 일부이므로 되도록 그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애써야 하며, 동시에 고의였든 고의가 아니었든 간에 남들에게 아픔을 준 우리 자신을 용서해야 한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이다.


남에게 도움을 주려고 애쓰는 습관은 심지어 죽음의 순간에도 행복을 가져다준다. 한 선사禪師는 두려움 없이 죽는 법에 관해 다음과 같이 조언한 적이 있다. “마지막 숨을 쉬면서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라.” 최후의 순간에 자기 자신에 대해 아무런 염려도 없는 상태를 상상해보라. 얼마나 평화로운 느낌이겠는가?


(5) 영적 방법 –자신만의 소중한 가치관 확립하기


우리는 보통 ‘영성’이라는 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삶의 측면, 예를 들어 신·영혼·가치(사랑·평화·진리) 또는 성스러운 연결 등을 표현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영적 수행은 이상적인 초월 존재에 대한 친밀감을 키우는 것과 관련된다. 그리하여 영적 수행이 이기적 욕망과 개인적 한계를 줄이는 과정이 되길 희망한다. 이런 접근방식은 영성에 대한 위로부터 아래로의 하향식 접근top-down approach이다. 아래로부터 위로의 상향식 접근bottom-up approach도 있는데, 바로 우리 코앞에서 벌어지는 불완전한 현실, 곧 일상생활이라는 기적과 친밀하게 접촉하는 방식이다. 영적 지향을 지닌 사람들은 대부분 두 가지 방식 모두를 필요한 것으로 인식한다. 초월적 이상으로 희망에 차 있으면서도, 일상 현실에 든든히 뿌리를 둔다.


이런 두 가지 접근방식에는 공통으로 스스로를 좀 더 가볍게 받아들이는 과정이 있다. 소중하면서도 순식간에 사라지는 세속 존재의 본질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신을 사랑함으로써 자아가 차츰 줄어들게 된다. 그 결과 세상에서 돌보고 가꾸어야 할 자아가 더 적어진다. 우리 자신이나 남들에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영적 자기돌봄 이면의 원칙은 ‘자기 내세우기’를 그만두는 가치관에 헌신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돌보는 행위가 우리가 믿는 종교를 거역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의 종교 전통은 다른 사람에 대한 연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지만 이런 말을 했던 예수조차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자 산속으로 몸을 피했다. 


성서 잠언 11장 17절 말씀이다. 

인자한 자는 자기 영혼을 이롭게 하고, 잔인한 자는 자기 몸을 해롭게 하느니라.


대부분의 종교는 누구나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붓다의 말씀이다.

마음으로 천지사방을 돌아다녀봐도 

자기보다 더 소중한 이를 찾지 못한다.

이처럼 모든 이가 스스로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니, 

스스로를 사랑하는 이는 남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


사실상 ‘자기 사랑하기’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결국 남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예로 종종 제시된다. 이것이 그 본보기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아내를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니라”(에베소서 5장 28절).


그런데 요즈음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해 애증이 교차한다. 더 이상 우리는 스스로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가 없다. 나는 그런 공백을 메우고자 이 책을 썼다. 아마도 마음에서 우러난 완전무결한 사랑의 더 좋은 사례는 우리가 사랑스러운 반려동물이나 순진무구한 아이한테 자연스럽게 느끼는 감정일지 모른다. 이런 감정을 추적해봄으로써 자신을 더 잘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다시 배우면, 우리는 그 사랑을 남들을 향해 좀 더 온전하게 넓혀나갈 수 있다.


영적 자기돌봄이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관을 키울 시간을 낸다는 의미다. 만일 자신의 가치관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우리를 둘러싼 소비문화의 가치인 쾌락 추구와 물질만능주의를 흡수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는가? 만일 자연과의 교감을 즐긴다면, 일주일에 한 번쯤은 야외로 나가는가? 종교 수행이 당신을 살찌우는가, 아니면 의무감에서 그저 하는 것인가? 좀 더 친절하고 편안하게 자신이나 남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고 있는가?


부모가 자녀의 신체·정신·감정·관계·영성 등 모든 측면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그 기술을 연마할 수 있다. 이런 돌봄을 받지 못했거나 그런 기술을 배웠지만 어른이 된 뒤로 전혀 써보지 못했다 해도, 지금 다시 배울 수 있다. 다만 필요한 것은 기꺼이 하는 마음과 약간의 창의력이다.


- 내용 출처: 『오늘부터 나에게 친절하기로 했다』, 크리스토머 거머 지음, 더퀘스트, 2018

- 전체 출처: 더퀘스트 포스트 http://naver.me/xdADh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