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7. 10:13ㆍ책 읽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혹시 당신이 낯을 가린다면, 여러 사람들이 시끌벅적 이야기하고 있을 때 다음과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지 않을까요?
- 대화의 테두리 안에 있으면서 자신은 아무것도 발언하지 않고 상대의 말에 맞장구만 치며,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만히 관찰하고 있다.
- 무리와 떨어진 곳에서 시치미를 떼고 묵묵히 다른 일을 하며 대화의 자초지종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이럴 때 낯을 가리는 사람은 말 한 마디 하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온 신경을 풀가동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진학, 전학, 이사, 입사, 전근, 이직이라는 국면에서 새로운 커뮤니티나 조직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될 때 낯가림 센서의 가동률이 높아집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전학할 때마다 이 낯가림 센서 스위치를 켜고 반 친구들의 관계성을 살펴 왔습니다. 전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고, 쓸데없는 참견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많았는데, 그러한 상황에서 편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주위 사람들을 관찰하여 개개인의 됨됨이나 인간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이야기에 억지로 참여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주위 사람들의 생각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경험을 쌓아왔기 때문에 ‘관찰하는 것만으로 그 사람의 됨됨이나 인간관계의 거의 90퍼센트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눈을 뜬 것입니다. 주위 사람들을 90퍼센트나 파악할 수 있다면, 호랑이에 날개를 단 격입니다. 부주의한 언행으로 자기 무덤을 파는 일도 없을뿐더러, 분위기를 못 읽고 타인의 기분을 망칠 걱정도 없습니다.
당신이 천성 낯가림쟁이라면, 인간 관찰의 결정적인 방법인 센서를 갈고 닦아야만 합니다.
다행히 의식적으로 훈련하면 할수록 확실하게 감도가 좋아져 인간 관찰력이 높아집니다. 다만, 센서의 스위치를 꺼둔 채 그냥 막연하게 대화를 듣거나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기만 한다면 인간관계를 속속들이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관계인 걸까?’
‘이 사람은 저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저 사람은 이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겉으로는 침착하고 조용해 보이는데, 이 사람이 진짜 원하는
것은 뭘까?’
‘이 사람은 빈틈이 없는데, 약점은 뭘까?’
‘이 사람은 왜 모두가 두려워하는 거지?’
이런 식으로 각각의 캐릭터의 본질과 인간관계의 미묘한 사정을 철저히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매우 흥미로운 일이기도 합니다.
인간 관찰력을 키우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전철 안에서도, 카페에서도,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라도 훈련 할 수 있습니다.
훈련 시 포인트는 두 가지.
첫 번째는 관찰하는 상대에 대해 관심과 흥미를 갖는 것
상대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센서의 스위치를 켜고 감도를 높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상대에게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는 것
관찰 당하고 있다는 것을 상대가 알게 되면 대번에 경계심을 보여 관찰 따위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게 되기 때문입니다.
‘형사나 스파이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반론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로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다는 점은 확실히 실력 있는 형사나 스파이와 비슷할지도 모릅니다.
다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그 목적이 ‘상대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입니다. 또한 그것은 상대를 위하는 것과도 관련됩니다.
타인을 잘 이해하기 위하여 관찰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이면서 불필요한 다툼을 피하고 평화롭게 지내기 위한 지혜인 것입니다.
■ <낯가림이 무기다> 중
